좋은 글의 조건 - 논증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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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닥터필로스 작성일18-03-31 13:52 조회4,0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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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란 무엇일까요?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어린이가 빠져들 정도의 흥미, 권위 있는 기관의 추천, 판매부수, 지인의 추천 등을 기준으로 책을 구입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으로 미루어 보아 좋은 책이란 ‘알아야 할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책’입니다. 이 경우 독서의 목적은 지식을 넓히는 것이 되겠습니다.
◈ 의미있는 독서의 조건
물론 이것은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기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먼저 기본적인 독해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즉 문장의 뜻을 읽고 이해하며, 글의 기본 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관련되는 기본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독서는 말 그대로 글씨를 줄줄 읽는 행위가 되어버립니다. 읽으면 알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읽혔지만 사실은 시간 낭비를 한 것입니다. 읽어 두면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다고 생각해서 읽혔지만 남아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은 오히려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닥터필로스 교육을 받는 학부모님들이라면 익히 알고 계시는 내용이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혼자 생각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시고 닥터필로스 수업을 받고 계실 테니까요.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관심을 두시는 것은 수업 외에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방법 특히 독서를 통해 이 능력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닥터필로스에서도 이러한 질문에 답해드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책’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읽으면서 저절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책, 일종의 도구로서의 책말입니다.
◈ 깊이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읽는 것만으로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진정한 의미의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을 말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우리가 깊이 생각한다고 할 때 ‘깊이 생각함’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특정한 현상, 특정한 생각에 대해 생각할 때 단지 보이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현상 너머의 원인, 생각의 전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책을 읽을 때에도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행동의 밑바닥에 깔린 또 다른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그의 행동의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을 다루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제반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또 어떠한 귀결을 가져올 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생각의 방식, 전제를 찾고 결론을 도출하는 생각의 방식을 말합니다. 바로 논증적으로 사고함입니다.
논증적으로 사고하면 결코 하나의 원인이나 전제를 찾는 데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어떤 전제가 있다면 그 전제의 전제는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과 구별됩니다. 논증에서 생각들은 철저하게 논리적 관계에 의해 결합되기 때문입니다. 또 단순히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런 근거에서라면 이렇게, 저런 근거에서라면 저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논증적으로 생각함에 다름 아닙니다.
◈ 논증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
그렇다면 논증적 사고를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그렇습니다. 논증적 사고에 의해 전개되는 책입니다. 논증적 사고가 드러나는 책을 보면서 그 생각들을 짚어 나가면 그렇게 사고하게 됩니다. 흔히 생각하듯 논증적으로 기술되는 글에 논설문 즉 주장하는 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이나 원칙을 풀어서 전달하는 설명문이나 사건의 흐름을 제시하는 서사에도 논증이라는 기술 방식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실 또는 사건이라도 그것과 관련해서 원인과 귀결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증적인 기술방식의 정점에 있는 책은 기원전 320년 경에 쓰여진 유클리드의 <원론>입니다. 이 책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최초의 인쇄기에서 두 번째로 찍어낸 책이며 성경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읽었고,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입니다.
이 책은 23개의 정의와 5 개의 공준 그리고 5개의 공리를 전제로 하여 명제를 증명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수학 책 따위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원론>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에 주목하면 풀립니다. 기본적 전제들(공리)에서 출발하여 철저하게 그 전제들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결과만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원론>이 근대적 교육제도가 성립하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교육 과정 중의 하나였던 이유는 이 철저한 논증적 기술 방식이 갖는 가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논증적 사고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삼각형에서 두 변의 길이를 더하면 나머지 한 변보다 더 길다.]
삼각형 ABC가 있다고 하자. 이 삼각형에서 어떤 두 변이든 더하면 나머지 한 변보다 더 긺을 보여야 한다. 즉, 변 BA, AC를 더하면 BC보다 더 길고, 변 AB, BC를 더하면 AC보다 더 길고, 변 BC, CA를 더하면 AB보다 더 긺을 보여야 한다.
변 BA를 길게 늘여서 직선 AD를 그어라. A의 길이가 CA와 같도록 만들어라. 그 다음 직선 DC를 그어라.
변 DA는 AC와 길이가 같으니, 각 ADC는 각 ACD와 크기가 같다. [1권 법칙 5] 따라서 각 BCD는 각 ADC보다 더 크다. [상식 5] 삼각형 DCB에서 각 BCD가 각 BDC보다 더 크다. 큰 각과 마주보는 변이 길이가 더 기니까 [1권 법칙 19] DB는 BC보다 더 길다.
그런데 DA는 AC와 길이가 같다. 따라서 BA와 AC를 더하면 BC보다 더 길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AB와 BC를 더하면 CA보다 더 길고, BC와 CA를 더하면 AB보다 더 긺을 보일 수 있다.
DA = AC ------------------------ ㉠
∠ADC=∠ACD (법칙 5에 의해) -------- ㉡
∴ ∠BCD 〉∠ADC ------------------ ㉢
∠BCD 〉∠BDC ------------------ ㉣
DB 〉BC (법칙 19에 의해) ----------- ㉤
∴ BA+AC 〉BC
먼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명제를 증명해 보이려고 했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과 법칙5에 의해 연역된 ㉡에 의해 ㉢이 도출됩니다. 여기에서 ㉢을 전제로 삼아 ㉤과 함께 해당 명제를 이끌어 냅니다. 전제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고 또 그 결론이 전제삼아 다른 결론을 도출하는 깊이 생각함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줍니다.
◈ 좋은 책이 없는 이유
문제는 그런 책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위 말하는 인문학의 고전들은 분명 이런 방식으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근대의 과학자, 철학자들은 자신이 책을 쓸 때 <원론>의 기술 방식을 따라서 저술했음을 자랑스러워하며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도출한 모든 원칙으로부터 생기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일반의지만이 공공의 복지라는 국가 설립의 목적에 따라 국가의 모든 힘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들의 이해관계의 대립 때문에 사회 건설이 필요한 것이라면, 이들 이해관계 속에 들어 있는 공통적인 요소가 사회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공통점이 없다고 한다면, 어떠한 사회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는 이러한 공동이익을 기반으로 하여 통치되어야 한다.
매우 논증적인 글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이해하려면 관련되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높은 차원의 개념입니다. 어린이들이 읽을 만한 논증적인 글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 없다는 말이 뜻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 DRP 수학 동화의 의미
어린이들의 사고력 함양을 목표로 하는 닥터필로스의 입장에서 사고력 함양에 도움이 되는 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습니다. 닥터필로스의 수학 동화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어린이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전달하되 닥터필로스의 수학 동화는 논증의 방식에 의해 기술되는 글입니다.
“아! 일의 자리도 A+A+A=B다. 일의 자리와 백의 자리가 같아.”
“그래. 그러니까 이게 이 문제의 특징 아닐까? 이것의 의미를 해석해보면 경우의 수를 더 줄일 수 있을지도 몰라.”
아이들이 웅성거렸습니다. 태훈이가 물었습니다.
“백의 자리, 일의 자리가 같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데?”
세찬이가 머뭇거리는 사이 옆에서 슬기가 대답했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 않겠어? 일단 백의 자리만 보면 천의 자리로 받아 올림이 없어. 하지만 십의 자리에서 받아 올림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 그런데 ㉠일의 자리가 백의 자리와 같아.”
“아! 알겠어, 슬기야. 그렇다면 ㉡그건 일의 자리에서 십의 자리로도 받아 올림이 없다는 뜻이야. 또 일의 자리에서 받아 올림이 없으니까 ㉢십의 자리에서 백의 자리로도 받아 올림이 없다는 뜻이고. 그러니까 한 마디로 ㉣어떤 자리에서도 받아 올림이 없어.”
세찬이의 말에 슬기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A+A+A=B이고 A+A+B=C인 거야. 그러니까 ㉥A+A+A+A+A=C인 거지.”
“아! 다섯 번 더해서 한 자리 수가 나오는 수. 그럼 A는 1이구나.”
십진법과 덧셈의 규칙을 바탕으로 숫자를 추론해내는 문제를 다루는 이 글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논증적 구조를 갖습니다. ㉠에서 ㉡을 연역하고, 또 ㉡에서 ㉢을 연역합니다. 또 ㉣의 의미를 해석하여 ㉤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을 도출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일련의 논증적 사고 과정입니다. 이 글을 읽는 어린이들은 논증적 사고 과정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됩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각각의 문장들이 의미하는 바의 내적 관계를 이해해야 다음 내용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에 이 책들의 의미가 있습니다. 술술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논리적 관계를 생각해야만 하고, 문장들 간의 논리적 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논증적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회원들에게 제공되는 닥터필로스 수학동화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반복하며 외웠던 유럽의 학생들처럼 우리 어린이들도 수학 동화를 꾸준히 읽어 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글을 제대로 파악하고 소화하기 위해서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논증적인 글이 있고 논증적 사고방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다루어지는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에 도움이 되는 책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닥터필로스님에 의해 2018-03-31 15:58:53 서지정보에서 복사 됨]
◈ 의미있는 독서의 조건
물론 이것은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기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먼저 기본적인 독해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즉 문장의 뜻을 읽고 이해하며, 글의 기본 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관련되는 기본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독서는 말 그대로 글씨를 줄줄 읽는 행위가 되어버립니다. 읽으면 알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읽혔지만 사실은 시간 낭비를 한 것입니다. 읽어 두면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다고 생각해서 읽혔지만 남아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은 오히려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닥터필로스 교육을 받는 학부모님들이라면 익히 알고 계시는 내용이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혼자 생각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시고 닥터필로스 수업을 받고 계실 테니까요.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관심을 두시는 것은 수업 외에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방법 특히 독서를 통해 이 능력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닥터필로스에서도 이러한 질문에 답해드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책’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읽으면서 저절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책, 일종의 도구로서의 책말입니다.
◈ 깊이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읽는 것만으로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진정한 의미의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을 말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우리가 깊이 생각한다고 할 때 ‘깊이 생각함’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특정한 현상, 특정한 생각에 대해 생각할 때 단지 보이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현상 너머의 원인, 생각의 전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책을 읽을 때에도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행동의 밑바닥에 깔린 또 다른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그의 행동의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을 다루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제반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또 어떠한 귀결을 가져올 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생각의 방식, 전제를 찾고 결론을 도출하는 생각의 방식을 말합니다. 바로 논증적으로 사고함입니다.
논증적으로 사고하면 결코 하나의 원인이나 전제를 찾는 데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어떤 전제가 있다면 그 전제의 전제는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과 구별됩니다. 논증에서 생각들은 철저하게 논리적 관계에 의해 결합되기 때문입니다. 또 단순히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런 근거에서라면 이렇게, 저런 근거에서라면 저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논증적으로 생각함에 다름 아닙니다.
◈ 논증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
그렇다면 논증적 사고를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그렇습니다. 논증적 사고에 의해 전개되는 책입니다. 논증적 사고가 드러나는 책을 보면서 그 생각들을 짚어 나가면 그렇게 사고하게 됩니다. 흔히 생각하듯 논증적으로 기술되는 글에 논설문 즉 주장하는 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이나 원칙을 풀어서 전달하는 설명문이나 사건의 흐름을 제시하는 서사에도 논증이라는 기술 방식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실 또는 사건이라도 그것과 관련해서 원인과 귀결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증적인 기술방식의 정점에 있는 책은 기원전 320년 경에 쓰여진 유클리드의 <원론>입니다. 이 책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최초의 인쇄기에서 두 번째로 찍어낸 책이며 성경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읽었고,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입니다.
이 책은 23개의 정의와 5 개의 공준 그리고 5개의 공리를 전제로 하여 명제를 증명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수학 책 따위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원론>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에 주목하면 풀립니다. 기본적 전제들(공리)에서 출발하여 철저하게 그 전제들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결과만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원론>이 근대적 교육제도가 성립하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교육 과정 중의 하나였던 이유는 이 철저한 논증적 기술 방식이 갖는 가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논증적 사고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삼각형에서 두 변의 길이를 더하면 나머지 한 변보다 더 길다.]
삼각형 ABC가 있다고 하자. 이 삼각형에서 어떤 두 변이든 더하면 나머지 한 변보다 더 긺을 보여야 한다. 즉, 변 BA, AC를 더하면 BC보다 더 길고, 변 AB, BC를 더하면 AC보다 더 길고, 변 BC, CA를 더하면 AB보다 더 긺을 보여야 한다.
변 BA를 길게 늘여서 직선 AD를 그어라. A의 길이가 CA와 같도록 만들어라. 그 다음 직선 DC를 그어라.
변 DA는 AC와 길이가 같으니, 각 ADC는 각 ACD와 크기가 같다. [1권 법칙 5] 따라서 각 BCD는 각 ADC보다 더 크다. [상식 5] 삼각형 DCB에서 각 BCD가 각 BDC보다 더 크다. 큰 각과 마주보는 변이 길이가 더 기니까 [1권 법칙 19] DB는 BC보다 더 길다.
그런데 DA는 AC와 길이가 같다. 따라서 BA와 AC를 더하면 BC보다 더 길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AB와 BC를 더하면 CA보다 더 길고, BC와 CA를 더하면 AB보다 더 긺을 보일 수 있다.
DA = AC ------------------------ ㉠
∠ADC=∠ACD (법칙 5에 의해) -------- ㉡
∴ ∠BCD 〉∠ADC ------------------ ㉢
∠BCD 〉∠BDC ------------------ ㉣
DB 〉BC (법칙 19에 의해) ----------- ㉤
∴ BA+AC 〉BC
먼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명제를 증명해 보이려고 했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과 법칙5에 의해 연역된 ㉡에 의해 ㉢이 도출됩니다. 여기에서 ㉢을 전제로 삼아 ㉤과 함께 해당 명제를 이끌어 냅니다. 전제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고 또 그 결론이 전제삼아 다른 결론을 도출하는 깊이 생각함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줍니다.
◈ 좋은 책이 없는 이유
문제는 그런 책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위 말하는 인문학의 고전들은 분명 이런 방식으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근대의 과학자, 철학자들은 자신이 책을 쓸 때 <원론>의 기술 방식을 따라서 저술했음을 자랑스러워하며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도출한 모든 원칙으로부터 생기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일반의지만이 공공의 복지라는 국가 설립의 목적에 따라 국가의 모든 힘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들의 이해관계의 대립 때문에 사회 건설이 필요한 것이라면, 이들 이해관계 속에 들어 있는 공통적인 요소가 사회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공통점이 없다고 한다면, 어떠한 사회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는 이러한 공동이익을 기반으로 하여 통치되어야 한다.
매우 논증적인 글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이해하려면 관련되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높은 차원의 개념입니다. 어린이들이 읽을 만한 논증적인 글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 없다는 말이 뜻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 DRP 수학 동화의 의미
어린이들의 사고력 함양을 목표로 하는 닥터필로스의 입장에서 사고력 함양에 도움이 되는 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습니다. 닥터필로스의 수학 동화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어린이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전달하되 닥터필로스의 수학 동화는 논증의 방식에 의해 기술되는 글입니다.
“아! 일의 자리도 A+A+A=B다. 일의 자리와 백의 자리가 같아.”
“그래. 그러니까 이게 이 문제의 특징 아닐까? 이것의 의미를 해석해보면 경우의 수를 더 줄일 수 있을지도 몰라.”
아이들이 웅성거렸습니다. 태훈이가 물었습니다.
“백의 자리, 일의 자리가 같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데?”
세찬이가 머뭇거리는 사이 옆에서 슬기가 대답했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 않겠어? 일단 백의 자리만 보면 천의 자리로 받아 올림이 없어. 하지만 십의 자리에서 받아 올림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 그런데 ㉠일의 자리가 백의 자리와 같아.”
“아! 알겠어, 슬기야. 그렇다면 ㉡그건 일의 자리에서 십의 자리로도 받아 올림이 없다는 뜻이야. 또 일의 자리에서 받아 올림이 없으니까 ㉢십의 자리에서 백의 자리로도 받아 올림이 없다는 뜻이고. 그러니까 한 마디로 ㉣어떤 자리에서도 받아 올림이 없어.”
세찬이의 말에 슬기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A+A+A=B이고 A+A+B=C인 거야. 그러니까 ㉥A+A+A+A+A=C인 거지.”
“아! 다섯 번 더해서 한 자리 수가 나오는 수. 그럼 A는 1이구나.”
십진법과 덧셈의 규칙을 바탕으로 숫자를 추론해내는 문제를 다루는 이 글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글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논증적 구조를 갖습니다. ㉠에서 ㉡을 연역하고, 또 ㉡에서 ㉢을 연역합니다. 또 ㉣의 의미를 해석하여 ㉤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을 도출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일련의 논증적 사고 과정입니다. 이 글을 읽는 어린이들은 논증적 사고 과정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됩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각각의 문장들이 의미하는 바의 내적 관계를 이해해야 다음 내용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에 이 책들의 의미가 있습니다. 술술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논리적 관계를 생각해야만 하고, 문장들 간의 논리적 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논증적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회원들에게 제공되는 닥터필로스 수학동화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반복하며 외웠던 유럽의 학생들처럼 우리 어린이들도 수학 동화를 꾸준히 읽어 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글을 제대로 파악하고 소화하기 위해서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논증적인 글이 있고 논증적 사고방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다루어지는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에 도움이 되는 책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닥터필로스님에 의해 2018-03-31 15:58:53 서지정보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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