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함을 견디는 것도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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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닥터필로스 작성일18-04-21 10:32 조회8,1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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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는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은 어린 시절에 길러져야 한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이 점에 있어서 책임이 막중하다.
그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쇼나 맛있는 음식 같은 수동적인 오락거리를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있으며, 아주 드문 경우 이외에는 매
일매일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주로 노력과 창조력에 의
해서 어린아이 스스로가 자기의 환경으로부터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야 한다. 극장구경처럼 신나면서도 육체적인 활동이 전혀
수반되지 않는 즐거움은 자주 있어서는 안된다. 자극은 약물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점점 더 많은 것이 필요하게 되며,
자극을 받는 동안의 육체적 수동성은 본능에 배치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란 어린 식물이 그렇듯이 동일한 토양에 가만히 놔둘 때에 가장 잘 자라는 법이다. 너무 잦은 여행과 너무 다양한 인
상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좋지 않으며 어린아이들이 자라나서 유익한 단조로움도 참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단
조로움이 그 자체로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단조로움이 있지 않고서는 어떤 종류의 좋은 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워즈워드의 '서곡'을 생각해 보자. 어떤 독자가 보든 워즈워드의 사상과 감정에 있어 조금이라도 가
치가 있는 것은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도회지의 청년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질 것이다. 어떤 진지하고도 건설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나 청년은 그러기 위해서 권태를 참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는 막대한 양의 권태를 자진해서
참아낼 것이다. 그러나 소년이 오락과 유흥에 치우친 삶을 살고 있다면 건설적이 목적이 저절로 소년의 마음 속에 자리 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에는 소년의 생각은 머나먼 성취를 향하기보다는 항상 목전의 쾌락에 쏠릴 것이기 때문
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권태를 참아낼 수 없는 세대는 소인들의 세대, 자연의 서서히 진행하는 섭리로부터 부당히 멀어진
사람들의 세대, 꽃병 속에 꽂아 놓은 꺾여진 꽃처럼 모든 생명력이 서서히 시들어 가는 사람들의 세대가 될 것이다.
< 행복의 정복(버트란드 러셀) > 중에서
자신의 아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바램이겠지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오히려 좋지 않을 수도 있답니다.
1930년에 쓰여진 책이라고 하는데 아마 부모들의 극성(?)은 시공을 초월하는 일종의 신념인가 봅니다. 당시의 영국의 세태가
오늘날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엄격한 청교도적 가정에서 자란 러셀경의 성장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우
리 엄마들이 새겨둘 만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올립니다.
그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쇼나 맛있는 음식 같은 수동적인 오락거리를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있으며, 아주 드문 경우 이외에는 매
일매일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주로 노력과 창조력에 의
해서 어린아이 스스로가 자기의 환경으로부터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야 한다. 극장구경처럼 신나면서도 육체적인 활동이 전혀
수반되지 않는 즐거움은 자주 있어서는 안된다. 자극은 약물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점점 더 많은 것이 필요하게 되며,
자극을 받는 동안의 육체적 수동성은 본능에 배치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란 어린 식물이 그렇듯이 동일한 토양에 가만히 놔둘 때에 가장 잘 자라는 법이다. 너무 잦은 여행과 너무 다양한 인
상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좋지 않으며 어린아이들이 자라나서 유익한 단조로움도 참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단
조로움이 그 자체로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단조로움이 있지 않고서는 어떤 종류의 좋은 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워즈워드의 '서곡'을 생각해 보자. 어떤 독자가 보든 워즈워드의 사상과 감정에 있어 조금이라도 가
치가 있는 것은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도회지의 청년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질 것이다. 어떤 진지하고도 건설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나 청년은 그러기 위해서 권태를 참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는 막대한 양의 권태를 자진해서
참아낼 것이다. 그러나 소년이 오락과 유흥에 치우친 삶을 살고 있다면 건설적이 목적이 저절로 소년의 마음 속에 자리 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에는 소년의 생각은 머나먼 성취를 향하기보다는 항상 목전의 쾌락에 쏠릴 것이기 때문
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권태를 참아낼 수 없는 세대는 소인들의 세대, 자연의 서서히 진행하는 섭리로부터 부당히 멀어진
사람들의 세대, 꽃병 속에 꽂아 놓은 꺾여진 꽃처럼 모든 생명력이 서서히 시들어 가는 사람들의 세대가 될 것이다.
< 행복의 정복(버트란드 러셀) > 중에서
자신의 아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바램이겠지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오히려 좋지 않을 수도 있답니다.
1930년에 쓰여진 책이라고 하는데 아마 부모들의 극성(?)은 시공을 초월하는 일종의 신념인가 봅니다. 당시의 영국의 세태가
오늘날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엄격한 청교도적 가정에서 자란 러셀경의 성장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우
리 엄마들이 새겨둘 만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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